취직과 승진, 프로젝트의 성공 같은 비즈니스의 요소들이 신속하게 결정되는 요즘, 우리들은 사람을 만난 지 2초 만에 그를 판단한다. 한 남자의 옷차림과 매너는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전체적으로 평가하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눈에 거슬리는 단 한 가지 아이템만으로 센스 없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도 있고, 장소와 상황에 맞지 않은 복식 때문에 비즈니스 관계가 진전되지 못할 수도 있다. 패션이나 문화적 센스가 없는 관리자는 그 직위에 필요한 다른 부분에도 둔감하리라고 짐작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이처럼 옷을 입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옷을 제대로 입는다는 것은 당신이 어떤 원칙을 알고 있고 그 원칙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을 시사한다. 장소와 상황에 맞는 옷차림은 주변 사람들을 존중한다는 뜻이며, 또한 상대에게서 존중 받고 싶은 마음을 보이지 않게 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업계의 특성이나 분위기에 따른 예외는 있지만 보통 색상이 어두운 수트 일수록 질서 있고 강한 인상을 남긴다. 보수적인 분야에서 일한다면 보다 진지한 분위기를 주는 수트를 고를 필요가 있고, 더블이나 원버튼 수트 등의 과감한 시도는 천천히 시도할 필요가 있다. 비즈니스맨으로서는 네이비나 차콜 그레이 계열의 2, 3 버튼 수트라면 안전한 선택이다. 다만 블랙 수트는 준엄해 보이며, 애도의 느낌이 깃들여져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보다는 장례식이나 포멀한 파티에 선호된다. 화이트와 블랙 수트는 다른 색상의 수트와는 그 무드가 선명하게 구별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장소에서만 입는 것이 좋다.
인생의 첫 번째 수트
멋진 수트는 ‘비싸 보이네'가 아닌 바로 ‘당신'이 ‘오늘 정말 멋있는데!’라는 찬사를 이끌어낸다. 수트에 중요한 건 외부가 아닌 내면, 수(數)의 문제가 질(質)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트는 그저 기계적으로 입어야 하는 유니폼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투자 개념으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빼어나게 잘 만든 수트란 단순히 가격표와 브랜드 라벨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훌륭한 소재와 재단술의 흔적, 수트가 만들어지기까지 소비된 소중한 노동력과 시간, 열정과 철학을 통해 만들어진 브랜드의 가치가 모여서 수트의 격을 말해주는 것이다(구매자의 입장에서는 브랜드의 이름값은 뺀 채 장인정신과 소재의 질, 단추에 대한 값만 지불하고 싶을테지만-----).
시대를 넘어 좋은 수트를 고르는 안목
수트의 가격은 소재의 질, 수작업의 양 그리고 브랜드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은 자신의 조건이다. 모든 사람이 수제 맞춤복을 입을 필요는 없으며, 이미 그레이 수트를 여러 벌 갖춰둔 남자가 좋은 브랜드라고 해서 또 회색을 옷장에 추가하지는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트를 마련하는 원칙은 이렇다. 일단 옷장에 수트가 한 벌도 없다고 상상한다. 수트를 오직 한 벌만 가질 수 있다면 그건 비즈니스와 관혼상제 모두에 적합한 차콜 그레이 울 소재가 우선이다. 혹시 보너스를 넉넉히 받아 두 벌을 장만할 수 있다면 차콜 그레이와 네이비 두 가지 컬러를 차례로 선택한다. 다행히 세 벌을 가질 수 있다면 차콜 그레이, 네이비, 그리고 브라운 순서로 옷장을 채운다. 이것은 시대와 국가를 넘어 오랫동안 이어져온 남성복의 역사이자 전통이며 클래식 복식을 이해하는 작은 수순이기도 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매일의 옷차림에 변화를 주는 동시에 수트들이 쉴 시간을 줄 수 있게 된다. 바꿔 말해서, 같은 수트를 이틀 연속 안 입는 방법으로 옷차림의 변화를 주면서, 자연스럽게 복장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는 것이다.
쥐색이라고 표현되는 차콜 그레이 컬러는 공식 석상에서 애용되는 동시에 상의와 하의를 각각 독립적으로 활용 가능하므로 최초로 구입하는 수트로서 특히 적합하다. 특히 어두운 회색 바지는블레이저나 다른 재킷과도 활용이 가능하므로 두루 쓰임새가 많을 것이다. 차콜 그레이보다 밝은 그레이 컬러는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트로서, 긴장감을 덜고 여유를 갖고 싶은 자리에 어울린다. 네이비 수트는 유럽과 한국에서 몹시 사랑 받는 색상으로 보수적인 자리나 신뢰감이 필요한 자리 모두에 적합하다. 네이비 수트의 상의는 독립적으로 다른 컬러의 바지와 함께 블레이저나 재킷처럼 입으면 활용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브라운 수트는 피부가 옐로우 톤인 아시아인에게 의외로 잘 어울리는데, 입었을 때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남다른 개성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할 만하다.
수트에서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소재와 패턴, 그리고 디자인이지만, 더욱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 부분은 오히려 실루엣이라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브랜드가 자신에게 맞을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자신에게 어울리는 실루엣을 가진 브랜드를 찾아내는 일이 쉬울 거라고 예상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과정이다. 컬러와 실루엣을 기반으로 기본 스타일을 갖춘 후엔 좀 더 다양한 색상과 패턴이 있는 수트를 구입한다. 이를테면 날씬해 보이는 스트라이프 수트를 마련하고 나서, 좀 더 드레시한 버들 브레스티드, 정장 또는 캐주얼 스타일로 다양하게 입을 수 있는 면이나 리넨 소재 수트로 옷장을 차근차근 늘려가는 것이다.
간단히 법칙을 정리하면 이렇다. 좋은 수트의 조건은 스타일, 소재, 봉제 이 3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향을 지향한다. 그래서 항상 좋은 수트를 찾는 습관을 들이고, 가격과 쉽게 타협하지 않으면서 유행을 타지 않는, 무늬가 없고 클래식한 아이템부터 시작해서 그 품목과 잘 어울리는 셔츠나 타이를 서서히 추가하는 것이다. 자신의 체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절한 어드바이스를 해주는 브랜드를 추천 받는 것도 좋다. 자신이 입을 옷이므로 가능하면 직접 구매해야 한다. 입어보지 않고 수트를 사는 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과 같다. 요즘 세상엔 있을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